詩가 있는 풍경

장마비가 지나간 오후에... 이명균

미스터 규니샘 2011. 2. 9. 20:19

 

장마비가 지나간 오후에

 

장마비가 지나 간 오후에

서편 끝으로 가을 빛 저녁노을이 곱게 감싸고 있습니다.

어깨엔 삶의 무게만큼이나 무거운 한숨이 내려앉았다가

노을 따라 어스름 속에 스며듭니다.

하나 둘 집집마다 불이 켜지고 도란도란 세상사는 이야기가 돋아나고 있습니다.

창문 곁을 지나는 어린 소녀는

자신의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줄 모르고 지나간 추억들을 생각합니다.

눈물이, 하얗게 빛나는 눈물이 소리개처럼 날아올라

소녀의 슬픔을 건져 올립니다.

마침,

아득한 날에 기억의 저편에서 머물고 있는 생각의 고삐를 잡아채는 것처럼

 

그 옛날엔 행복 했었지요.

아무 어려움 없이

그러나 지금은 모든 것이 변했어요.

어느 한 순간 , 행복에 겨워서 마냥 즐거워 할 무렵에

불행은 갑자기 닥쳐왔지요

가족들은

나의 오빠들, 언니, 그리고 가장 슬픈 건

제 어린 남동생이, 제가 제일 귀여워한 남동생이 멀리

하늘나라로 가버린 것이지요.

 

엄마, 아빠 . 메아리 없는 빈 하늘에 불러 봅니다. 엄마, 아빠 제 목소리를 듣나요.

 

저녁놀이 진 하늘엔 하얀 초승달이 떠 있습니다.

조각 달빛 머무는 무죄(無罪)의 층계를 밟고서 소녀는 올라갑니다.

아무 슬픔도 없고 괴로움도 없는

달빛 그림자는 지고 별이 총총히 밤하늘을 수놓습니다.

 

소녀의 눈물이 흘렀던 그 자리엔 어느 듯

달맞이꽃이 피어났습니다. 애달픈 사랑이 분수처럼, 불꽃놀이처럼 그렇게 그렇게

 

 

일천구백구십육년 칠월 팔일  이 명 균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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