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문일침

대한민국 언론은 지금 몇 년인가.

미스터 규니샘 2007. 6. 19. 09:19
대한민국 언론은 지금 몇년인가 (퍼온 글)
글쓴이 : 수호천사 번호 : 651조회수 : 12007.06.10 09:34
대한민국 언론은 지금 몇년인가
반성없는 권력 아닌지 되돌아 볼 때
올해로 6·10항쟁이 20주년을 맞았다.

1987년 6월의 거리에서 ‘독재타도, 호헌철폐’, ‘직선제 쟁취’를 외치던 시민들의 함성은 군사독재정권으로부터 ‘6·29선언’이라는 항복을 받아냈고, 그 날 그 거리에서 뿌려졌던 민주주의의 씨앗들이 지난 20년간 무럭무럭 자라 성년의 나무로 성장했다. 몇 차례의 선거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가 완전히 뿌리를 내렸고, 사라진 특권과 권위주의의 자리에서 민주적 질서와 가치가 새롭게 움을 트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사회에는 교체되지 않는 권력의 특권이 남아있고, 눈부신 경제성장의 이면에 양극화의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남북관계의 질곡을 넘어선 새로운 평화체제의 구현도 풀어야 할 숙제다.

지금의 우리를 긍지 속에 살게 한 6월 민주항쟁의 정신을 이어받아 성장과 복지가 함께 하는 더불어 잘 사는 나라, 화해와 타협이 존중되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나라, 남북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나라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편집자>


#1. 1987년 6월 18일 저녁, 서울역 앞 광장.
독재타도와 대통령 직선제를 외치던 시민들이 신문 4만3000부를 싣고 경남지역으로 내려가던 한 신문사 발송차량을 불태워 버렸다.
앞서 6월 10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조작·은폐 규탄 및 호헌철폐 국민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서울시청 앞으로 몰려든 시민들은 근처 신문사 건물 앞에 걸려 있던 신문사기를 끌어내려 불태웠다.
당시 독재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했던 언론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가 폭발한 것이었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에 나선 시민들은 독재정권의 나팔수로 전락한 당시 언론들에게 크게 분노했다.

#2. 2007년 6월.
기자실의 폐쇄적 특권주의과 낡은 취재관행을 바꾸고, 정부와 언론의 건전한 긴장관계를 복원하기 위해 추진된 정부의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에 대해 전 언론이 ‘언론탄압’, ‘국민의 알 권리 수호’ 등을 외치며 반발하고 있다.

1987년 6·10항쟁 이후 지난 20년간의 민주화 과정 속에 치러진 몇 차례의 선거는 대통령, 국회의원 등 정치권력을 교체가능한 것으로 만들었지만 실제 우리사회에 교체불가능한 권력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은폐했다.
정치권력은 수 차례의 선거 등을 통해 국민의 감시와 통제 아래 놓였지만 교체불가능한 권력은 여전히 특권적 지위를 누리고 있다. 대표적인 ‘교체되지 않은 권력’이 바로 언론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언론은 ‘탈특권, 탈권위’라는 민주화의 큰 흐름에 조응하지 않고 스스로를 권력기구화 했다는 것이 시민사회의 평가다.

◆ 외부로부터 주어진 언론민주화

1980년대 독재정권은 ‘당근과 채찍’을 통해 철저히 언론을 통제했다. 언론인 강제해직, 언론통폐합, 언론기본법 등을 통해 언론을 통제하는 한편 언론사와 언론인들을 회유하기 위해 각종 혜택을 제공했다. 협조적인 언론사의 발행면수, 발행가격 담합을 묵인했고, 윤전기 도입, 부동산매매 등에서 감세, 감면 등 특혜를 제공했다. 여기에 편승해 일부 언론사들이 크게 사세를 확장할 수 있었다.

또 급여인상, 해외연수와 여행, 주택자금 지원, 학자금 지원 등 각종 '떡고물'로 언론인들을 회유, 순응시켰다.
이처럼 독재정권의 ‘당근과 채찍’에 길들여진 대다수 언론들은 사실상 비판기능을 상실한 ‘제도언론’으로 전락함으로써 공분의 대상이 됐다.

1986년 9월 당시 김주언 한국일보 기자가 ‘말’지에 1985년 9월∼1986년 8월까지 편집국에 전달된 10개월 분량의 보도지침을 폭로해 구속되는 등 저항의 흐름이 있었지만 대다수 언론들은 침묵으로 일관했다. 이듬해 1월 중앙일보와 동아일보의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보도는 한국 언론의 자랑거리로 기록된다.

어쨌든 87년 민주화로 촉발된 언론민주화는 1987년 10월 한국일보 노동조합을 시작으로 중앙 일간지, 방송 등에서 잇달아 결성된 노조를 바탕으로 1988년 11월 전국언론노동조합연맹(언론노련)이 출범하는 것으로 결실을 맺는다.

특히 1988년 국민주 방식으로 시민들의 성금을 모아 창간한 ‘한겨레신문’은 그동안 제도언론이 다루지 못한 성역을 과감히 보도함으로써 언론민주화를 향한 사회적 기대에 일정하게 부응했다.

◆ 스스로 권력이 돼 버린 ‘교체되지 않는 권력’

1991년 9월 동아일보 편집국에서 열린 편집국장 이·취임식.
이 자리에서 당시 김중배 편집국장은 "지금까지 언론의 최대의 적은 정치권력이었지만 앞으로는 자본이 될 것”이라며 자본의 언론통제를 비판한 뒤 사표를 던졌다.

이 사건은 87년 민주화 이후 확대된 언론자유가 역설적이게도 언론에 대한 자본의 지배로 이어져 결국 언론이 스스로 권력기구화되는 것을 예고한 전주곡이었다.

언론자유가 확대되면서 동시에 언론 수익에서 광고 비중이 갈수록 늘어 광고주의 입김이 커지기 시작했다. 또 자본이 직접 소유하는 형태의 신생 신문사가 대거 생겨났고, 이들간 증면, 섹션화 경쟁 등이 치열해졌다. 방송 역시 1995년 지역민영방송 확대, 케이블방송 허가 등으로 본격적인 경쟁체제에 돌입했다.

언론사간 경쟁은 과거 독점체제를 잠시 흔들었지만 곧바로 사업다각화 등을 통해 덩치를 키운 언론재벌 중심의 과점체제가 만들어졌고, 언론재벌의 자본확장은 언론이 권력기구로 성장하는 물적 토대가 됐다.

이처럼 스스로 물적 토대를 갖춘 언론재벌은 과거 독재권력에 편승해 권력을 휘두르던 ‘마름’의 역할에서 벗어나 스스로 주인 노릇을 하는 권력기구로 변질됐다. 어떤 언론사의 사주는 '밤의 대통령'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특히 언론사 소유의 집중과 독점현상은 언론이 사회적 공론장으로 기능하지 않고, 사주 개인의 이해를 대변하는 사적 언론으로 전락하는 경향을 낳게 했다.

이제 언론은 막대한 사회적 의제 설정 능력을 활용해 직접 ‘대통령 만들기’에 나서는가 하면, ‘OO장학생’ 등 유력 정치인과의 네트워크를 통해 새로운 권억유착 구조를 만들었다. 또 언론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를 활용, 정치적 반대파를 몰아내는 등 본격적인 ‘정권 흔들기’에 나서는 등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2001년 7월 서울 안국동 느티나무카페에서 민주화를 위한 전국교수협의회 주최로 '조선일보 구독 거부와 언론개혁 촉구 선언' 기자회견이 열렸다.

예컨대 1993년 당시 한완상 통일원 장관에 대한 색깔 공세로 문민정부의 대북정책을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던 조선일보는 다시 1998년 당시 최장집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장에 대한 색깔논쟁을 일으키는 것을 시작으로 집권기간 내내 국민의정부를 물고 늘어졌다.

◆ 스스로 개혁할 것인가, 개혁으로 내몰릴 것인가

IMF외환위기 이후 대대적으로 몰아닥친 인력감축, 임금삭감 등 경영구조개선과 인터넷신문, 포털뉴스 등 새로운 매체의 등장은 언론사의 경영난을 일상화시켜 일부 언론사 중심의 과점체제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었다.

2005년 기준 10대 전국단위 일간지 중 조·중·동 3사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출액의 경우 65.7%, 발행부수의 75.3%를 차지(미디어오늘, 2006년 10월 19일자)할 정도였다.

이러한 언론시장의 과점현상은 결국 여론의 과점으로 이어져 일부 언론이 사회적 의제설정에서 특정집단의 이해를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부작용을 초래한다.
문제는 이러한 시장 과점과 언론의 당파성이 언론 전체의 신뢰하락을 자초했다는 점이다.

지난해 8월 한국기자협회가 한길리서치와 공동으로 전국기자 300명을 대상으로 ‘가장 신뢰하는 언론사’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45%가 ‘없다’고 답변했다. 신뢰도 1위로 나타난 한겨레신문(15%)의 3배에 달하는 수치였다. 다음으로 경향(5%), 조선(4%), 중앙(3.7%), 동아(2.0%) 순이었다.
이 조사가 더욱 충격적인 것은 기자 스스로 언론보도를 불신한다는 점때문이었다.

1987년 6월의 거리에서 신문수송차량, 신문사기가 불태워지는 등 시민들의 공분의 대상이었던 언론이 20년이 지난 현재 다시 신뢰의 위기를 겪고 있는 것이다.

87년 민주화 이후 스스로 권력화됐고, 이후 여러 정부를 거치면서 정치권력과 유착했던 언론권력, 이 교체되지 않는 권력의 특권주의가 다시 민주주의의 적으로 부각되고 있는 것이다.

그로부터 정확히 20년이 지난 2007년 6월, 우리 사회는 다시 한번 ‘언론자유’가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5월 22일 발표된 ‘취재지원 선진화방안’에 대해 언론들은 ‘언론자유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20년 전 6월의 거리에서 터져나온 요구가 정치권력으로부터의 자유였다면 지금은 서슴지 않고 대통령을 비판할 수 있을 정도로 자유로워진 상황이다. 오히려 대다수 사람들은 언론들이 누린 자유만큼 합당한 책임을 다했는지 의구심을 갖고 있다.

또 기자실에 상주하면서 마음대로 부처 사무실을 방문해 공무원을 만나는 것이 언론자유와 무슨 상관이 있는지, 혹은 낡은 특권에 대한 집착을 정당화하기 위해 언론자유를 끌어대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있다.

1987년 6·10항쟁 이후 지난 20년 동안 진행된 민주화는 정부, 재벌 등 온갖 특권의 벽을 허물고, 민주적 문화와 제도를 수용하는 과정이었지만 유독 언론만은 상대적으로 무풍지대로 남아왔다. 언론은 걸핏하면 권력 비판을 내세우지만 정작 스스로 민주적 개혁에서 벗어난 권력이 됨으로써 시대정신에 역행하는 특권집단이 돼 버린 것이 아닌지 돌아 볼 일이다.

스스로 낡은 취재관행을 끊어내고, 건전한 정언관계를 복원하는 언론개혁에 주체적으로 나설 것인지, 20년 전처럼 다시 개혁의 대상으로 전락할 것인지 언론 스스로 선택해야 할 순간이다.